2009년 1월 31일 토요일 저녁 7시 27분
[Lover of Books’]
There was a woman in despair.
The hunger made her poorer.
Please,
she begged.
It was almost over.
She knew
though.
Once she did have him in her hands
with the trembling grip of a starving predator.
She wasn't the only one for him.
Her lover shared and fed others, too,
like rain to its land.
The shameless mistress
made love with him before her eyes and
every time it was new and different.
She never knew anything like it made before
by any two.
She cried ruby ocean
and it brought the hottest setting sun
into her lonely garden.
Saturday, January 31, 2009
Friday, January 30, 2009
Jan. 29. 5pm
2009년 1월 29일 목요일 오후 5시경.
[Ben과 나 그리고 책]
다시 어제와 같은 카페를 찾았다. 벤은 그레이엄 그린의 ‘문제의 중심’을 읽는다. 벤이 때때로 읽기를 멈추고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을 내게 읋어준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에 동의한다. 벤은 보통 때보다 한 시간 늦게 잠 자리에 드는 것을 허락받은 일곱살박이 마냥 신이 낫다.
“난 어느 여성 작가도 그런 문장들을 지어내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마지막 대여섯 문장들은 정말 ‘남자’의 언어로 쓰여진 것 같아요,” 내가 말한다.
벤은 이미 내가 남성성을 시기하는 것을 알고 씨익 웃는다. 벤은 칠공 페이지쯤에서 잠시 멈추더니 내게 재밌는 구절을 읽어준다. 중심 인물이 서아프리카의 캠프에 도착한 새로운 영국인에게 그 곳의 바퀴벌레를 견뎌내는 방법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그는 ‘바퀴벌레 사냥 게임’을 고안해 내고, 매일 그가 잡거나 죽인 바퀴벌레의 수를 벽 한 중앙 스코어 보드에 기록을 한다. 그는 가로 줄에 ‘잡은 놈’, ‘변기에 내린 놈’이라 쓰고 그 아래로 날짜별 스코어를 쭉 적는다. 최고의 날에 그는 ‘잡은 놈’ 아래에 9, ‘변기에 내린 놈’ 아래에 5라는 숫자를 각각 기록했다. 그가 신참에게 말한다. ‘’잡은 놈’과 ‘변기에 내린 놈’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지. 네 손으로 죽인 놈과 죽이지 못한 놈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건 반칙이나 다름 없다구. 마침 자네가 새로 왔으니 한 날을 잡아 친선 경기를 벌이는 것도 재밌겠군. 내 자네에게 연습할 시간을 좀 주지. 나는 닷새 동안 사냥을 않겠네. 게임은 취침 전 단 오분 간일세.’
벤은 책에서 눈을 떼고 키득 거리며 웃는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더 먹으려는 배고픈 사람처럼 다시 마음의 양식으로 눈을 돌린다. 벤은 그의 검은 노트북을 꺼내어 두어 문장을 끄적 거려본다.
순간 나와 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인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한 예가 생각났다. 그것은 나와 벤이 책을 다루는 태도이다. 나는 좋아하는 책에 나의 손떼를 여러겹 묻히고 싶어한다. 나는 책장 위로 생각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고, 마음의 길을 들인다. 읽기를 마친 나의 책들은 나로 인해 낡아지고, 오랜 것이 되고, 파괴된다. 반면 벤은 갓 태어난 아기를 안 듯 책을 다룬다. 여린 아기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그 목을 받치듯 그는 책장을 세게 넘기는 법이 없다. 그는 책의 어느 한 곳을 자국이 남도록 뒤로 젖히거나 평평하게 펴는 법이 없다. 그는 페이지 한 구석을 세모로 접는 법도 없고, 연필로 연하게 표시를 하는 법도 없다. 그에게 각각의 책은 르부르에 전시된 보호 유리 속 진품의 모나리자와 같은 것이다. 책을 쥔 그의 손은 언어의 예술에 대한 경외와 작가 앞에서의 겸손으로 그 얼마나 조심스럽고 두렵게 움직이는지. 하하!
[Ben과 나 그리고 책]
다시 어제와 같은 카페를 찾았다. 벤은 그레이엄 그린의 ‘문제의 중심’을 읽는다. 벤이 때때로 읽기를 멈추고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을 내게 읋어준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에 동의한다. 벤은 보통 때보다 한 시간 늦게 잠 자리에 드는 것을 허락받은 일곱살박이 마냥 신이 낫다.
“난 어느 여성 작가도 그런 문장들을 지어내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마지막 대여섯 문장들은 정말 ‘남자’의 언어로 쓰여진 것 같아요,” 내가 말한다.
벤은 이미 내가 남성성을 시기하는 것을 알고 씨익 웃는다. 벤은 칠공 페이지쯤에서 잠시 멈추더니 내게 재밌는 구절을 읽어준다. 중심 인물이 서아프리카의 캠프에 도착한 새로운 영국인에게 그 곳의 바퀴벌레를 견뎌내는 방법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그는 ‘바퀴벌레 사냥 게임’을 고안해 내고, 매일 그가 잡거나 죽인 바퀴벌레의 수를 벽 한 중앙 스코어 보드에 기록을 한다. 그는 가로 줄에 ‘잡은 놈’, ‘변기에 내린 놈’이라 쓰고 그 아래로 날짜별 스코어를 쭉 적는다. 최고의 날에 그는 ‘잡은 놈’ 아래에 9, ‘변기에 내린 놈’ 아래에 5라는 숫자를 각각 기록했다. 그가 신참에게 말한다. ‘’잡은 놈’과 ‘변기에 내린 놈’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지. 네 손으로 죽인 놈과 죽이지 못한 놈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건 반칙이나 다름 없다구. 마침 자네가 새로 왔으니 한 날을 잡아 친선 경기를 벌이는 것도 재밌겠군. 내 자네에게 연습할 시간을 좀 주지. 나는 닷새 동안 사냥을 않겠네. 게임은 취침 전 단 오분 간일세.’
벤은 책에서 눈을 떼고 키득 거리며 웃는다. 그는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더 먹으려는 배고픈 사람처럼 다시 마음의 양식으로 눈을 돌린다. 벤은 그의 검은 노트북을 꺼내어 두어 문장을 끄적 거려본다.
순간 나와 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인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한 예가 생각났다. 그것은 나와 벤이 책을 다루는 태도이다. 나는 좋아하는 책에 나의 손떼를 여러겹 묻히고 싶어한다. 나는 책장 위로 생각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고, 마음의 길을 들인다. 읽기를 마친 나의 책들은 나로 인해 낡아지고, 오랜 것이 되고, 파괴된다. 반면 벤은 갓 태어난 아기를 안 듯 책을 다룬다. 여린 아기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그 목을 받치듯 그는 책장을 세게 넘기는 법이 없다. 그는 책의 어느 한 곳을 자국이 남도록 뒤로 젖히거나 평평하게 펴는 법이 없다. 그는 페이지 한 구석을 세모로 접는 법도 없고, 연필로 연하게 표시를 하는 법도 없다. 그에게 각각의 책은 르부르에 전시된 보호 유리 속 진품의 모나리자와 같은 것이다. 책을 쥔 그의 손은 언어의 예술에 대한 경외와 작가 앞에서의 겸손으로 그 얼마나 조심스럽고 두렵게 움직이는지. 하하!
Jan. 27. 3am
2009년 1월 27일 수요일 새벽 3시 43분
[엄마]
내 방이 덥습니다. 무거운 공기 때문인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나는 오늘도 아버지에게 글을 적지 못했습니다. 내일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연약한 내 마음이 원망스럽지만 잠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아는 바가 없습니다. 도피. 수억만리를 사이에 두고도, 십일개월을 흘러 보냈는데도 원죄와 같이 씻을 수 없는 내 가족에 대한 마음의 짐은 가벼워 질 줄 모릅니다. 때때로 고아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그를 버린 부모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봅니다. 자식을 버린 부모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지 그려봅니다. 내가 가족을 떠나는 것을 또한 생각해 봅니다. 자식을 버린 부모와 같이 나도 용서받지 못할 수치스러움과 죄스러움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까요? 내게서 버려진 내 가족은 버림받은 슬픔과 역정에 평생 아파해야 할까요? 마음이 금새 약해집니다. 나는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기에 천천히 죽는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죽음에 가깝게 치달아야 내가 이 끈을 놓을 수 있게 될까요? 나는 가족이 그립지 않아요. 보고싶지 않습니다.
나는 고장난 축음기 위를 달리며 짧은 구간을 반복하는 음악의 한 소절처럼 자꾸만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내 어머니의 얼굴을 지어내려 고개를 서레 젓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그녀의 얼굴로 인해 약해지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아요. 왜 나의 어머니는 그토록 많이 울어야 했을까요? 내 어머니의 모습이 저 멀리로부터 천천히 내게로 다가옵니다. 그녀의 얼굴이 뚜렷해지려 하면 나는 눈물로 얼룩진 그 흉상을 보기 싫어 다시 고개를 젓습니다. 머릿속의 상이 지워지고 검은 바탕 위로 다시 같은 모습의 그녀가 멀리로부터 소리없이 다가옵니다. 나는 밀어냅니다. 그녀가 다시 다가옵니다. 나는 지워냅니다. 그녀가 다시 그려집니다. ‘엄마, 울지마…’ 또렷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한 마디 건내봅니다. 내 뺨 위로 그녀의 눈물이 흐릅니다. 소금보다 짠 절은 눈물이 내 양 볼을 따끔거리게 합니다.
[엄마]
내 방이 덥습니다. 무거운 공기 때문인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나는 오늘도 아버지에게 글을 적지 못했습니다. 내일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연약한 내 마음이 원망스럽지만 잠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아는 바가 없습니다. 도피. 수억만리를 사이에 두고도, 십일개월을 흘러 보냈는데도 원죄와 같이 씻을 수 없는 내 가족에 대한 마음의 짐은 가벼워 질 줄 모릅니다. 때때로 고아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그를 버린 부모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봅니다. 자식을 버린 부모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지 그려봅니다. 내가 가족을 떠나는 것을 또한 생각해 봅니다. 자식을 버린 부모와 같이 나도 용서받지 못할 수치스러움과 죄스러움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까요? 내게서 버려진 내 가족은 버림받은 슬픔과 역정에 평생 아파해야 할까요? 마음이 금새 약해집니다. 나는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기에 천천히 죽는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죽음에 가깝게 치달아야 내가 이 끈을 놓을 수 있게 될까요? 나는 가족이 그립지 않아요. 보고싶지 않습니다.
나는 고장난 축음기 위를 달리며 짧은 구간을 반복하는 음악의 한 소절처럼 자꾸만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내 어머니의 얼굴을 지어내려 고개를 서레 젓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그녀의 얼굴로 인해 약해지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아요. 왜 나의 어머니는 그토록 많이 울어야 했을까요? 내 어머니의 모습이 저 멀리로부터 천천히 내게로 다가옵니다. 그녀의 얼굴이 뚜렷해지려 하면 나는 눈물로 얼룩진 그 흉상을 보기 싫어 다시 고개를 젓습니다. 머릿속의 상이 지워지고 검은 바탕 위로 다시 같은 모습의 그녀가 멀리로부터 소리없이 다가옵니다. 나는 밀어냅니다. 그녀가 다시 다가옵니다. 나는 지워냅니다. 그녀가 다시 그려집니다. ‘엄마, 울지마…’ 또렷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한 마디 건내봅니다. 내 뺨 위로 그녀의 눈물이 흐릅니다. 소금보다 짠 절은 눈물이 내 양 볼을 따끔거리게 합니다.
Jan. 24. 1am [Jay]
2009년 1월 24일 토요일 새벽 1시 44분
[Anais, my mother's land, Jay and Alec]
아나이스,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당신을 가슴 깊이 존경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글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듯이 나도 나의 글을 통해 오랜동안 지속해온 마음의 갈등과 싸움을 마치고 싶습니다.
나의 나라를 떠나온 지 열 달하고 스무날 정도가 지났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나는 내가 살던 동네의 주황빛 밤 가로등이 켜진 골목길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우리 집을 나와 오른쪽 귀퉁이를 돌아가면 내가 더운 여름 저녁 무렵에 즐겨 찾던 카페가 보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나는 그 곳이 그립습니다.
아나이스, 당신께 나의 친구 ‘제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요? 그는 내가 ‘벤’에게서 거리감을 느낄 때마다 마냥 생각나는 한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절실하게 그리워하는 한 사람입니다. 그는 내가 수년간 알고 지낸 나의 사랑스러운 벗입니다. 나는 제이의 자연스러움을 사랑합니다. 제이는 충동과 감정으로 하루 하루를 태워 날리는 멋스러운 괴짜입니다. 나는 고집스럽고 눈물이 많은 제이를 사랑합니다. 간혹 그는 아무 것도 아닌 나의 말이나 작은 몸짓에 하늘이 찢어지도록 웃곤 합니다. 내가 이유를 물으면 그는 내게 답하는 대신 ‘Silly woman(엉뚱한 여자)’라고 나를 부르고는 씨익 웃고 맙니다. 나는 때때로 제이가 나를 ‘Silly woman’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합니다. 힘 하나 안들이고 이 단순한 기억만으로도 나는 달콤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그와 나란히 앉아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싱긋 웃고 싶습니다. 아무런 말이나 마구 주저리고 제이가 나를 ‘키드’, ‘달링’, ‘실리 워먼’이라고 불러주기를,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를, 내 이마에 입맞춰 주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싶습니다.
나는 제이에게 작은 시를 적어보냅니다.
Jay
Jay, my lovely old friend, is a strange man.
This man lives days full of impulse and emotion.
He is a stubborn man and never runs out of tears.
I love him for his nature.
Today I look at the gloomy sky above my head and think
that his laughter could burst any of chubby clouds on the sky.
I remeber sitting next to him,
looking out the violet midnight sky
with a simple happy smile on my face,
just because I was with him.
He used to call me darling and I used to tell him
that he was a silly man.
We both
felt good then,
seeing each other closing eyes sitting close.
Oh,
Jay.
그가 웃겠지요. 나의 맘은 이미 행복으로 가득 차 오릅니다.
알렉이라는 친구도 생각납니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왠지모르게 그에겐 무엇이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를 아무런 비판적 잣대없이 듣고 또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를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마주 앉아 맛있게 먹었던 매운 중국 국수를 떠올려봅니다. 나는 이야기를 하며 반짝이는 그의 눈초리가 재밌고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재밌는 시인입니다. 언젠가 그에 대한 시를 적어 보내고 싶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미 단편의 소설을 적어 보낸 일이 있습니다. 나는 아직 그에게서 어떠한 답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알아내는 일, 내가 그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숙고하는 일은 정말 흥미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마음을 빼앗은 사람들을 위해 시를 짓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Anais, my mother's land, Jay and Alec]
아나이스,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당신을 가슴 깊이 존경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글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듯이 나도 나의 글을 통해 오랜동안 지속해온 마음의 갈등과 싸움을 마치고 싶습니다.
나의 나라를 떠나온 지 열 달하고 스무날 정도가 지났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나는 내가 살던 동네의 주황빛 밤 가로등이 켜진 골목길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우리 집을 나와 오른쪽 귀퉁이를 돌아가면 내가 더운 여름 저녁 무렵에 즐겨 찾던 카페가 보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나는 그 곳이 그립습니다.
아나이스, 당신께 나의 친구 ‘제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요? 그는 내가 ‘벤’에게서 거리감을 느낄 때마다 마냥 생각나는 한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절실하게 그리워하는 한 사람입니다. 그는 내가 수년간 알고 지낸 나의 사랑스러운 벗입니다. 나는 제이의 자연스러움을 사랑합니다. 제이는 충동과 감정으로 하루 하루를 태워 날리는 멋스러운 괴짜입니다. 나는 고집스럽고 눈물이 많은 제이를 사랑합니다. 간혹 그는 아무 것도 아닌 나의 말이나 작은 몸짓에 하늘이 찢어지도록 웃곤 합니다. 내가 이유를 물으면 그는 내게 답하는 대신 ‘Silly woman(엉뚱한 여자)’라고 나를 부르고는 씨익 웃고 맙니다. 나는 때때로 제이가 나를 ‘Silly woman’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합니다. 힘 하나 안들이고 이 단순한 기억만으로도 나는 달콤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그와 나란히 앉아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싱긋 웃고 싶습니다. 아무런 말이나 마구 주저리고 제이가 나를 ‘키드’, ‘달링’, ‘실리 워먼’이라고 불러주기를,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를, 내 이마에 입맞춰 주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싶습니다.
나는 제이에게 작은 시를 적어보냅니다.
Jay
Jay, my lovely old friend, is a strange man.
This man lives days full of impulse and emotion.
He is a stubborn man and never runs out of tears.
I love him for his nature.
Today I look at the gloomy sky above my head and think
that his laughter could burst any of chubby clouds on the sky.
I remeber sitting next to him,
looking out the violet midnight sky
with a simple happy smile on my face,
just because I was with him.
He used to call me darling and I used to tell him
that he was a silly man.
We both
felt good then,
seeing each other closing eyes sitting close.
Oh,
Jay.
그가 웃겠지요. 나의 맘은 이미 행복으로 가득 차 오릅니다.
알렉이라는 친구도 생각납니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왠지모르게 그에겐 무엇이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를 아무런 비판적 잣대없이 듣고 또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를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마주 앉아 맛있게 먹었던 매운 중국 국수를 떠올려봅니다. 나는 이야기를 하며 반짝이는 그의 눈초리가 재밌고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재밌는 시인입니다. 언젠가 그에 대한 시를 적어 보내고 싶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미 단편의 소설을 적어 보낸 일이 있습니다. 나는 아직 그에게서 어떠한 답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알아내는 일, 내가 그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숙고하는 일은 정말 흥미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마음을 빼앗은 사람들을 위해 시를 짓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Jan. 22. 9pm
[Shoe Licker Boy]
평온한 나의 하루를 쥐고 흔드는 침입자들. 숀과 마이크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얇은 벽을 타고, 끝까지 닫기지 않는 내 방문의 틈새를 통해 세 네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시끄럽다.
요즘처럼 내가 고독을 두 팔 벌려 끌어안은 적이 있었던가? 고독을 벗 삼으면 치를 떨게 하는 외로움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혼자일때면 어김없이 내 가슴팍을 격렬하게 두드리던 슬픔이 언제부터인가 그 발길을 뚝 끊었다. 나의 내면의 세상이 외부의 그것보다 더 크고, 더 깊게 그 공간을 넓혀나가는 시간. 나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 나의 언어를 찾아내고, 배우며, 말하는 시간. 나를 가장 긴장하게 하고, 의식하게 하며, 말 더듬게 하는 사랑의 시간. 글을 다시 써 내려가면서 나는 행복을 소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나이스,
당신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리없이 미소 지을 당신을 생각하니 나는 순간 어린아이가 되어 그의 자랑스러움을 느껴봅니다.
어젯밤 나는 독한 술을 찾아 밤의 카페 두 곳을 찾았습니다. 진한 마티니 두 잔을 비우고 나니 술 기운에 눈이 감기려 들었습니다. 카페 밖으로 걸어나와 담배를 피우며 찬바람을 쐬었습니다.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듯한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웃으며 다가와 내 옆에 가만히 섰습니다. ‘I like your outfit,’ 청년은 내게 말하고 소리내어 웃습니다. ‘Thank you,’ 내가 답하고 이 친구를 바라봅니다. 애프로 머리를 한 이 친구는 짧막한 검정 가죽 점퍼와 8부쯤 내려오는 검정 바지를 입고 회색 양말 위로 짙은 색상의 슬리퍼를 신고 있습니다. 나는 이 청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이 청년을 ‘shoe licker(신발 핥개)’라고 부릅니다.
아나이스, 이 친구가 내 앞에 등을 구부리고 주저 앉습니다. 그러더니 내가 신고 있는 카라멜색의 구두를 두 손으로 붙들고 자기의 머리를 그것에 가져다 댑니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청년이 구두를 핥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청년이 구두를 다 핧을 동안 움직이지 않고 내 양발을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청년이 몸을 일으키고 나를 향해 활짝 웃습니다. 그의 코와 입 언저리가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Thank you,’ 내가 그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른 어떤 말도 생각해 낼 수 없었습니다. 이내 청년은 소리내 웃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술에 취한 나는 불행을 느낍니다. 나는 글을 적을 수 없어요. 나는 꿈이 없는 깊은 잠을 청하고 싶은 생각만 할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몸에 독을 붓고 죽음의 유혹에 불려갑니다.
아나이스, 이야기와 웃음이 가득한 밤의 카페에서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그대의 얼굴을 잠자코 보고만 싶습니다. 당신의 그 붉은 새와 같은 입술에 취해 내 마음을 모두 잃고 싶습니다. 당신의 작고 뜨거운 몸을 내 팔 안에 뉘이고 눈을 감고 싶습니다. 눈을 감으면 나의 눈꺼풀 뒤로 잠시 모습을 숨기는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보고 말아야 하기에 나는 그 밤 잠을 청할 수가 없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그대와 나란히 누워 꼭 한번... 붉은 밤을...
평온한 나의 하루를 쥐고 흔드는 침입자들. 숀과 마이크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얇은 벽을 타고, 끝까지 닫기지 않는 내 방문의 틈새를 통해 세 네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시끄럽다.
요즘처럼 내가 고독을 두 팔 벌려 끌어안은 적이 있었던가? 고독을 벗 삼으면 치를 떨게 하는 외로움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혼자일때면 어김없이 내 가슴팍을 격렬하게 두드리던 슬픔이 언제부터인가 그 발길을 뚝 끊었다. 나의 내면의 세상이 외부의 그것보다 더 크고, 더 깊게 그 공간을 넓혀나가는 시간. 나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 나의 언어를 찾아내고, 배우며, 말하는 시간. 나를 가장 긴장하게 하고, 의식하게 하며, 말 더듬게 하는 사랑의 시간. 글을 다시 써 내려가면서 나는 행복을 소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나이스,
당신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리없이 미소 지을 당신을 생각하니 나는 순간 어린아이가 되어 그의 자랑스러움을 느껴봅니다.
어젯밤 나는 독한 술을 찾아 밤의 카페 두 곳을 찾았습니다. 진한 마티니 두 잔을 비우고 나니 술 기운에 눈이 감기려 들었습니다. 카페 밖으로 걸어나와 담배를 피우며 찬바람을 쐬었습니다.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듯한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웃으며 다가와 내 옆에 가만히 섰습니다. ‘I like your outfit,’ 청년은 내게 말하고 소리내어 웃습니다. ‘Thank you,’ 내가 답하고 이 친구를 바라봅니다. 애프로 머리를 한 이 친구는 짧막한 검정 가죽 점퍼와 8부쯤 내려오는 검정 바지를 입고 회색 양말 위로 짙은 색상의 슬리퍼를 신고 있습니다. 나는 이 청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이 청년을 ‘shoe licker(신발 핥개)’라고 부릅니다.
아나이스, 이 친구가 내 앞에 등을 구부리고 주저 앉습니다. 그러더니 내가 신고 있는 카라멜색의 구두를 두 손으로 붙들고 자기의 머리를 그것에 가져다 댑니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청년이 구두를 핥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청년이 구두를 다 핧을 동안 움직이지 않고 내 양발을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청년이 몸을 일으키고 나를 향해 활짝 웃습니다. 그의 코와 입 언저리가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Thank you,’ 내가 그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른 어떤 말도 생각해 낼 수 없었습니다. 이내 청년은 소리내 웃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술에 취한 나는 불행을 느낍니다. 나는 글을 적을 수 없어요. 나는 꿈이 없는 깊은 잠을 청하고 싶은 생각만 할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몸에 독을 붓고 죽음의 유혹에 불려갑니다.
아나이스, 이야기와 웃음이 가득한 밤의 카페에서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그대의 얼굴을 잠자코 보고만 싶습니다. 당신의 그 붉은 새와 같은 입술에 취해 내 마음을 모두 잃고 싶습니다. 당신의 작고 뜨거운 몸을 내 팔 안에 뉘이고 눈을 감고 싶습니다. 눈을 감으면 나의 눈꺼풀 뒤로 잠시 모습을 숨기는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보고 말아야 하기에 나는 그 밤 잠을 청할 수가 없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그대와 나란히 누워 꼭 한번... 붉은 밤을...
Jan. 22. 3am
2009년 1월 22일 금요일 새벽 3시 반경
목요일 밤. 나는 취했다. 졸립다. 손가락 끝의 간질거림과 가슴 한복판의 서늘함, 눈거풀을 지긋이 누르는 무게, 시큼한 혀 뿌리의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나는 적는다. 독에 취한 글을. 내가 내일 마실 독보다 더 치명적인 독에 취한 글.
마이크 래가투다의 도톰한 소년의 입술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빤히 본다. 아! 물어 뜯고픈 저 입술.
아나이스… 헨리… 나를 깨우지 마세요. 나는 꿈 없는 잠을 이루는 소녀입니다. 그대들의 꿈 속으로 나를 부르지 마세요. 그대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초대 앞에 나는 힘 없이 고개를 젓습니다. 갈구하는 것이 같아도 취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진 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자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나요? 눈이 감깁니다. 나의 연약함을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소녀의 검은 잠 속으로 나를 찾아와 주세요. 우린 이름 모를깊은 색에 빠져 더 아름답게, 더 완벽하게 이야기할 것 입니다. 입을 맞출 것입니다. 서로를 소유할 것입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재회를 기약하지 않는 연인들이 되어 이별보다 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목요일 밤. 나는 취했다. 졸립다. 손가락 끝의 간질거림과 가슴 한복판의 서늘함, 눈거풀을 지긋이 누르는 무게, 시큼한 혀 뿌리의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나는 적는다. 독에 취한 글을. 내가 내일 마실 독보다 더 치명적인 독에 취한 글.
마이크 래가투다의 도톰한 소년의 입술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빤히 본다. 아! 물어 뜯고픈 저 입술.
아나이스… 헨리… 나를 깨우지 마세요. 나는 꿈 없는 잠을 이루는 소녀입니다. 그대들의 꿈 속으로 나를 부르지 마세요. 그대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초대 앞에 나는 힘 없이 고개를 젓습니다. 갈구하는 것이 같아도 취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진 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자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나요? 눈이 감깁니다. 나의 연약함을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소녀의 검은 잠 속으로 나를 찾아와 주세요. 우린 이름 모를깊은 색에 빠져 더 아름답게, 더 완벽하게 이야기할 것 입니다. 입을 맞출 것입니다. 서로를 소유할 것입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재회를 기약하지 않는 연인들이 되어 이별보다 더 격정적인 사랑을 나눌 것입니다.
Jan. 21. 7pm
2009년 1월 21일 오후 7시 18분.
뉴욕주의 서쪽 끝, 버팔로 시내로 짐을 옮겼다. 겨울이 되면 눈보라와 바람이 하도 ‘지독’한지라 사람들은 이곳을 오대호 지역의 ‘겨드랑이’라고 부른다. 아파트가 꽤 쌀쌀하다.
이틀 전 잠자리에 들기 전 ‘Henry & June’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페이지 한 구석을 살짝 접어놓았다. 창 틈 새로 들어오는 한기에 어깨를 떨며 나는 방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 귀절을 다시 찾아 읽어본다.
I see the world as you see it (because they are Henry’s whores. I love them), you will sometimes see it as I do.
뉴욕주의 서쪽 끝, 버팔로 시내로 짐을 옮겼다. 겨울이 되면 눈보라와 바람이 하도 ‘지독’한지라 사람들은 이곳을 오대호 지역의 ‘겨드랑이’라고 부른다. 아파트가 꽤 쌀쌀하다.
이틀 전 잠자리에 들기 전 ‘Henry & June’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페이지 한 구석을 살짝 접어놓았다. 창 틈 새로 들어오는 한기에 어깨를 떨며 나는 방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 귀절을 다시 찾아 읽어본다.
I see the world as you see it (because they are Henry’s whores. I love them), you will sometimes see it as I do.
Jan. 19. 2am
Jan. 18. 6pm
[Anais Nin에 대한 생각과 ‘Good and Bad, and Oriental’]
세 시께가 다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는 것과 잠자리에 드는 것, 시작하는 일과 끝내는 일. 매일 하기 싫은 두 가지의 일, 하지만 그럭저럭 해내고야 마는 두 가지의 일.
몸을 씻고 복숭아 빛깔의 연지를 두 볼에 장난스럽게 발라봤다. ‘화장할 일도 참 없네.’ 마지막으로 남은 뻑뻑한 식빵의 머리와 꼬리 두 장으로 프렌치 토스트를 대강 만들어 흑설탕에 찍어 먹었다. 어제 만든 커피를 잔에 반쯤 부어 전자레인지로 뜨겁게 데웠다. ‘오늘은 네 시 전에 자러 갔으면 좋겠는데.’

2009년 1월 18일 오후 6시경.
탁자 위에 놓인 ‘Henry & June’을 집어 들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또 다시 공부해본다. 어제보다 더 작아진 그녀의 입술. 부드럽고 가는 손가락. 선하고 수줍은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똑똑하고 욕심많은 그녀의 눈. 그녀의 얼굴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작가의 성숙함과 천한 매춘부의 날 것과 같은 선정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신비로운 것이었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녀. 28살의 그녀는 너그럽고 질투가 많은 남편이 있었고, 풍미있는 음식을 해주고 편지를 정리해주는 하녀를 두었고,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쓰고 시간을 보낼 작은 작업실을 갖고 있었고,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사촌을 가까이 두었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사모하는 여성스러움을 갖추었고, 사람의 마음과 사랑에 빠지는 순수함과 진실성을 가졌고, 도덕성과 호기심, 여자로서의 자신과 작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던 인간다움과 용기를 가진 부유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같은 나이의 나는 까다롭고 질투가 뭔지 모르는 애인이 있고, 음식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군소리 없이 뭐든 씹고 삼킬 수 있는 좋은 비위가 있고, 편지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얕은 인간관계를 맺었고, 글을 적을 조그마한 노트북이 있고, 모든 식구들이 잠에 든 사이 살이 잔뜩 오른 내 둥근 가슴을 입안 가득 문 채 서둘러 나를 겁탈한 어젯밤 꿈 속의 셋째 삼촌이 있고, 오래된 것과 나쁜 것들을 욕심내는 소탈함이 있고, 사람의 몸과 사랑에 빠지는 순수함과 진실성이 내게도 또한 있고, 도덕성과 호기심, 여자로서의 나와 태어나고픈 작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어리석음과 비겁함을 가진 가난한 인간이다. 그녀와 나는 이래저래 참 닮은 셈이다.
그녀를 향한 나의 질투는 나의 사랑만큼이나 지독해져 가는 것 같다.
열 세번째 페이지의 마지막 부분을 살짝 손 봄으로써 나의 첫번째 영문 단편을 마쳤다. 십이월 초의 어느날 반쯤 써내려갔던 글은 여섯 장을 달린 끝에 더이상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라 그 속력을 줄이고 결국 버려진 아이처럼 뚝 멈춰서야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빈 마음으로 읽었던 Hemingway의 단편과 여전히 저 먼 곳 어딘가에서 술에 취한 여행을 즐기는 Dave의 저널, 언제나 나의 부러움과 존경을 사는 꾸준한 시인 Alec의 자연스러운 열정으로부터 나는 중단한 단편의 결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 이틀새 이어적어 완성한 내 영문단편에 ‘Good and Bad, and Oriental’이라는 제목을 붙여졌다. ‘제목이 중요한가?’ 나는 깊은 반성없이 대강 상징적인 세 단어를 얽어붙여 대강 제목을 만들어 버렸다.
이 짧은 소설은 시인 Alec을 위한 것이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글이자 그 누구에 대한 글도 아니며 내가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결말까지 완성한 영문 소설이자 고찰과 진실성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부끄러운 조잡함이다. Alec에게 글을 보내는 내 솔직한 마음은 그에게서 비웃음이라도 사길 바라는 마조키스트의 변태성 같은 것이다.
세 시께가 다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는 것과 잠자리에 드는 것, 시작하는 일과 끝내는 일. 매일 하기 싫은 두 가지의 일, 하지만 그럭저럭 해내고야 마는 두 가지의 일.
몸을 씻고 복숭아 빛깔의 연지를 두 볼에 장난스럽게 발라봤다. ‘화장할 일도 참 없네.’ 마지막으로 남은 뻑뻑한 식빵의 머리와 꼬리 두 장으로 프렌치 토스트를 대강 만들어 흑설탕에 찍어 먹었다. 어제 만든 커피를 잔에 반쯤 부어 전자레인지로 뜨겁게 데웠다. ‘오늘은 네 시 전에 자러 갔으면 좋겠는데.’
2009년 1월 18일 오후 6시경.
탁자 위에 놓인 ‘Henry & June’을 집어 들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또 다시 공부해본다. 어제보다 더 작아진 그녀의 입술. 부드럽고 가는 손가락. 선하고 수줍은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똑똑하고 욕심많은 그녀의 눈. 그녀의 얼굴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작가의 성숙함과 천한 매춘부의 날 것과 같은 선정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신비로운 것이었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녀. 28살의 그녀는 너그럽고 질투가 많은 남편이 있었고, 풍미있는 음식을 해주고 편지를 정리해주는 하녀를 두었고,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쓰고 시간을 보낼 작은 작업실을 갖고 있었고,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사촌을 가까이 두었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사모하는 여성스러움을 갖추었고, 사람의 마음과 사랑에 빠지는 순수함과 진실성을 가졌고, 도덕성과 호기심, 여자로서의 자신과 작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던 인간다움과 용기를 가진 부유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같은 나이의 나는 까다롭고 질투가 뭔지 모르는 애인이 있고, 음식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군소리 없이 뭐든 씹고 삼킬 수 있는 좋은 비위가 있고, 편지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얕은 인간관계를 맺었고, 글을 적을 조그마한 노트북이 있고, 모든 식구들이 잠에 든 사이 살이 잔뜩 오른 내 둥근 가슴을 입안 가득 문 채 서둘러 나를 겁탈한 어젯밤 꿈 속의 셋째 삼촌이 있고, 오래된 것과 나쁜 것들을 욕심내는 소탈함이 있고, 사람의 몸과 사랑에 빠지는 순수함과 진실성이 내게도 또한 있고, 도덕성과 호기심, 여자로서의 나와 태어나고픈 작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어리석음과 비겁함을 가진 가난한 인간이다. 그녀와 나는 이래저래 참 닮은 셈이다.
그녀를 향한 나의 질투는 나의 사랑만큼이나 지독해져 가는 것 같다.
열 세번째 페이지의 마지막 부분을 살짝 손 봄으로써 나의 첫번째 영문 단편을 마쳤다. 십이월 초의 어느날 반쯤 써내려갔던 글은 여섯 장을 달린 끝에 더이상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라 그 속력을 줄이고 결국 버려진 아이처럼 뚝 멈춰서야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빈 마음으로 읽었던 Hemingway의 단편과 여전히 저 먼 곳 어딘가에서 술에 취한 여행을 즐기는 Dave의 저널, 언제나 나의 부러움과 존경을 사는 꾸준한 시인 Alec의 자연스러운 열정으로부터 나는 중단한 단편의 결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 이틀새 이어적어 완성한 내 영문단편에 ‘Good and Bad, and Oriental’이라는 제목을 붙여졌다. ‘제목이 중요한가?’ 나는 깊은 반성없이 대강 상징적인 세 단어를 얽어붙여 대강 제목을 만들어 버렸다.
이 짧은 소설은 시인 Alec을 위한 것이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글이자 그 누구에 대한 글도 아니며 내가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결말까지 완성한 영문 소설이자 고찰과 진실성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부끄러운 조잡함이다. Alec에게 글을 보내는 내 솔직한 마음은 그에게서 비웃음이라도 사길 바라는 마조키스트의 변태성 같은 것이다.
Jan. 18. 4am
2009년 1월 18일 새벽 4시반경.
<아나이스 닌에 대한 생각>
Anais Nin의 Henry & June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글은 나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반드시 풀어내고야 말아야 하는 숙제와 같은 질문들. 깊은 내면으로부터의 명령. 자신에 대한 끝을 모를 물음들…
1930년대에 탄생한 그녀의 시와 같이 아름다운 고백들이 인종, 시간, 문화, 환경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절실히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책을 손에 쥔 나는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이 마음이 들뜬다.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은 늦은 저녁에 마시는 커피와 같이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조용하고 서늘한 공간 속에 너무도 선명하고 뜨겁게 느껴지는 몸 한복판의 두근거림.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은 이곳 저곳에서 그 맥을 끊어야 했다. 아! 내 볼을 붉히는 그녀의 여성스러움과 솔직함. 나는 책을 덮고 뒷표지에 흑백으로 실린 젊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녀의 크고 취한 듯한 짙은 눈, 얇고 지적인 여성스러운 입술, 구불구불 탐스럽게 윤이 나는 검은 머릿결, 가는 턱선 아래로 자연스럽게 가져온 그녀의 두 손. 그녀의 가느다란 마법과 같은 작곡가의 손, 여인의 손. 자신감과 꿈에 절은 시인의 손. 나는 질투를 느끼고 만다.
모든 게 사실일까? 그녀의 일기장 속의 담긴 수많은 고백들. 그녀의 솔직함의 순도는 얼마일까?
‘아나이스! 당신만이 나와 가장 친밀하게 은밀한 사랑과 꿈에 대한 갈구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당신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싶어요.’
그녀는 발가벗은 이야기꾼. 나는 마음을 빼앗긴 그녀의 단 한 사람의 청중.
그녀의 작은 새처럼 가냘픈 목소리가 나를 촉구한다. '미정, 네 속의 '그녀'를 찾아내세요...'
<아나이스 닌에 대한 생각>
Anais Nin의 Henry & June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글은 나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반드시 풀어내고야 말아야 하는 숙제와 같은 질문들. 깊은 내면으로부터의 명령. 자신에 대한 끝을 모를 물음들…
1930년대에 탄생한 그녀의 시와 같이 아름다운 고백들이 인종, 시간, 문화, 환경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절실히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책을 손에 쥔 나는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이 마음이 들뜬다.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은 늦은 저녁에 마시는 커피와 같이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조용하고 서늘한 공간 속에 너무도 선명하고 뜨겁게 느껴지는 몸 한복판의 두근거림.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은 이곳 저곳에서 그 맥을 끊어야 했다. 아! 내 볼을 붉히는 그녀의 여성스러움과 솔직함. 나는 책을 덮고 뒷표지에 흑백으로 실린 젊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녀의 크고 취한 듯한 짙은 눈, 얇고 지적인 여성스러운 입술, 구불구불 탐스럽게 윤이 나는 검은 머릿결, 가는 턱선 아래로 자연스럽게 가져온 그녀의 두 손. 그녀의 가느다란 마법과 같은 작곡가의 손, 여인의 손. 자신감과 꿈에 절은 시인의 손. 나는 질투를 느끼고 만다.
모든 게 사실일까? 그녀의 일기장 속의 담긴 수많은 고백들. 그녀의 솔직함의 순도는 얼마일까?
‘아나이스! 당신만이 나와 가장 친밀하게 은밀한 사랑과 꿈에 대한 갈구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당신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싶어요.’
그녀는 발가벗은 이야기꾼. 나는 마음을 빼앗긴 그녀의 단 한 사람의 청중.
그녀의 작은 새처럼 가냘픈 목소리가 나를 촉구한다. '미정, 네 속의 '그녀'를 찾아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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