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께가 다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는 것과 잠자리에 드는 것, 시작하는 일과 끝내는 일. 매일 하기 싫은 두 가지의 일, 하지만 그럭저럭 해내고야 마는 두 가지의 일.
몸을 씻고 복숭아 빛깔의 연지를 두 볼에 장난스럽게 발라봤다. ‘화장할 일도 참 없네.’ 마지막으로 남은 뻑뻑한 식빵의 머리와 꼬리 두 장으로 프렌치 토스트를 대강 만들어 흑설탕에 찍어 먹었다. 어제 만든 커피를 잔에 반쯤 부어 전자레인지로 뜨겁게 데웠다. ‘오늘은 네 시 전에 자러 갔으면 좋겠는데.’
2009년 1월 18일 오후 6시경.
탁자 위에 놓인 ‘Henry & June’을 집어 들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또 다시 공부해본다. 어제보다 더 작아진 그녀의 입술. 부드럽고 가는 손가락. 선하고 수줍은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똑똑하고 욕심많은 그녀의 눈. 그녀의 얼굴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작가의 성숙함과 천한 매춘부의 날 것과 같은 선정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신비로운 것이었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녀. 28살의 그녀는 너그럽고 질투가 많은 남편이 있었고, 풍미있는 음식을 해주고 편지를 정리해주는 하녀를 두었고,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쓰고 시간을 보낼 작은 작업실을 갖고 있었고,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사촌을 가까이 두었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사모하는 여성스러움을 갖추었고, 사람의 마음과 사랑에 빠지는 순수함과 진실성을 가졌고, 도덕성과 호기심, 여자로서의 자신과 작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던 인간다움과 용기를 가진 부유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같은 나이의 나는 까다롭고 질투가 뭔지 모르는 애인이 있고, 음식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군소리 없이 뭐든 씹고 삼킬 수 있는 좋은 비위가 있고, 편지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얕은 인간관계를 맺었고, 글을 적을 조그마한 노트북이 있고, 모든 식구들이 잠에 든 사이 살이 잔뜩 오른 내 둥근 가슴을 입안 가득 문 채 서둘러 나를 겁탈한 어젯밤 꿈 속의 셋째 삼촌이 있고, 오래된 것과 나쁜 것들을 욕심내는 소탈함이 있고, 사람의 몸과 사랑에 빠지는 순수함과 진실성이 내게도 또한 있고, 도덕성과 호기심, 여자로서의 나와 태어나고픈 작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어리석음과 비겁함을 가진 가난한 인간이다. 그녀와 나는 이래저래 참 닮은 셈이다.
그녀를 향한 나의 질투는 나의 사랑만큼이나 지독해져 가는 것 같다.
열 세번째 페이지의 마지막 부분을 살짝 손 봄으로써 나의 첫번째 영문 단편을 마쳤다. 십이월 초의 어느날 반쯤 써내려갔던 글은 여섯 장을 달린 끝에 더이상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라 그 속력을 줄이고 결국 버려진 아이처럼 뚝 멈춰서야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빈 마음으로 읽었던 Hemingway의 단편과 여전히 저 먼 곳 어딘가에서 술에 취한 여행을 즐기는 Dave의 저널, 언제나 나의 부러움과 존경을 사는 꾸준한 시인 Alec의 자연스러운 열정으로부터 나는 중단한 단편의 결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 이틀새 이어적어 완성한 내 영문단편에 ‘Good and Bad, and Oriental’이라는 제목을 붙여졌다. ‘제목이 중요한가?’ 나는 깊은 반성없이 대강 상징적인 세 단어를 얽어붙여 대강 제목을 만들어 버렸다.
이 짧은 소설은 시인 Alec을 위한 것이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글이자 그 누구에 대한 글도 아니며 내가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결말까지 완성한 영문 소설이자 고찰과 진실성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부끄러운 조잡함이다. Alec에게 글을 보내는 내 솔직한 마음은 그에게서 비웃음이라도 사길 바라는 마조키스트의 변태성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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